요엘 1장 1-12절 "기쁨의 뿌리가 마르는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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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입] 1875년 여름, 미국 네브래스카주 플랫츠마우스 지역 상공에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웠습니다. 록키산맥메뚜기 떼였습니다. 목격자 앨버트 차일드가 직접 관측하고 기록을 남겼는데, 그 규모는 길이 1,800마일, 너비 최소 110마일. 미국 동북부 열한 개 주를 합친 것과 맞먹는 면적을 닷새 동안 뒤덮었고, 추정 개체 수는 무려 12조 5천억 마리였습니다. 지금까지 인류 역사상 관측된 가장 큰 생물 집단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메뚜기 떼는 밀과 보리, 과일나무는 물론이고 사람들이 널어놓은 빨래와 담요까지 갉아먹었습니다. 농부들은 총을 들고 밭으로 나갔지만, 결국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밭과 집을 내어주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이보다 2,700년쯤 앞서, 유다 땅에서도 이와 흡사한 재앙이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 요엘서의 배경입니다.
[본문 해석] 요엘 1장은 "전무후무한" 메뚜기 재앙으로 시작됩니다. 2절에서 하나님은 이렇게 물으십니다. "이런 일이 너희의 날에나 너희 조상들의 날에 있었느냐." 답은 명백히 "없다"입니다. 그리고 4절에서는 팟종이가 남긴 것을 메뚜기가 먹고, 메뚜기가 남긴 것을 느치가 먹고, 느치가 남긴 것을 황충이 먹었다고 말합니다.
한 물결이 지나가면 다음 물결이 와서 남은 것마저 남김없이 먹어치우는, 회복의 여지조차 없는 철저한 파괴입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이 재앙이 사회의 한 계층만 덮친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본문은 세 종류의 사람을 차례로 부릅니다.
첫째, 5절의 취한 자들입니다. "취한 자들아 너희는 깨어 울지어다." 포도주로 무뎌진 감각조차 이 재앙 앞에서는 깨어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둘째, 8-9절의 제사장들입니다. "소제와 전제가 여호와의 전에 끊어졌고 제사장은 슬퍼하는도다." 이것은 단순한 물자 부족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매일 드리던 예배 자체가 끊어졌다는 것, 언약 관계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칼빈은 이 구절을 두고, 하나님이 성전의 가장 기본적인 제사조차 끊기도록 허락하신 것이야말로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진노가 얼마나 깊은지를 보여주는 가장 분명한 증거라고 해석했습니다.
셋째, 11-12절의 농부들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상실은 마지막 한 문장으로 수렴됩니다. "이는 사람의 기쁨이 말랐음이로다." 포도나무도 마르고, 무화과나무도 마르고, 종내는 사람의 기쁨 그 자체가 말랐다고 말합니다.
취한 자의 쾌락이든, 제사장의 거룩한 제물이든, 농부의 땀의 열매든 — 그 모든 기쁨은 결국 같은 뿌리에서 나옵니다. 6-7절에서 하나님은 이 땅을 "내 땅", 이 포도나무를 "내 포도나무"라 부르십니다. 세속의 즐거움도 거룩한 예배도, 결국 하나님이 주시는 것 위에 서 있습니다. 그 뿌리가 흔들리면, 세속과 거룩의 구분 없이 모든 기쁨이 함께 마릅니다.
[핵심 메시지] 기쁨의 뿌리가 마르는 자리, 그곳이 바로 하나님이 우리를 다시 부르시는 자리입니다. 요엘 1장은 아직 회개하라는 명령을 내리지 않습니다. 그저 재앙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직면하게 하고, 정직하게 슬퍼하게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기쁨을 잃은 자리에서 형식적인 종교 행위나 침묵으로 도망치는 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그 마른 자리에서 우리가 걸음을 멈추고 "내 기쁨의 진짜 뿌리는 어디에 있었는가"를 정직하게 묻기를 원하십니다.
[적용 1 — 전무후무한 재난 앞에서, 관리할 것이 아니라 물어야 할 것]
국민일보 보도에 따르면, 최근 글로벌 컨설팅기관 CDP의 보고서는 이상기후로 이미 3,890개 기업이 입은 손실이 4조 936억 원에 이르며, 앞으로 예상되는 손실 규모는 무려 1,009조 원에 달한다고 경고했습니다. 지난여름 광복절 연휴 기간에는 거제 지역에 800밀리미터의 물폭탄이 쏟아져 대형 조선소의 출근길이 막히는 일까지 있었습니다. 전에 없던 규모의 재난이 이미 우리 곁의 현실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재난 앞에서 보험과 정책으로 "관리해야 할 리스크"만을 생각할 뿐, 요엘의 청중처럼 걸음을 멈추어 "이것이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를 하나님 앞에 묻지는 않습니다. 창조주의 소유이신 땅이 신음하고 있다면, 그것은 관리 대상이기 전에 우리의 무뎌진 마음을 깨우시려는 하나님의 부르심일 수 있습니다.
[적용 2 — 다음 세대에게 우리는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요엘 1장 3절은 이 재앙을 "너희 자녀에게 말하고, 그 자녀는 또 그 자녀에게" 전하라고, 삼대에 걸쳐 명령합니다. 그런데 오늘 한국교회는 정확히 그 전수의 고리가 끊어지는 자리에 서 있습니다. 지난 5월 한 다음세대 목회전략 콘퍼런스에서, 한 목회자는 "학령인구 감소율보다 교회학교 학생 수 감소율이 훨씬 가파른 현실은 우리의 다음세대 교육 전략 어딘가에 큰 구멍이 있다는 증거"라고 지적했습니다. 같은 자리에서 한 신학교수는 신앙 이탈의 근본 원인을 신앙과 학업의 분리로 진단하며, 교회 프로그램이 아니라 부모가 신앙 전수의 실제 주체로 서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요엘의 명령은 제사장이 아니라 각 가정을 향한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자녀에게 무엇을 물려주고 있는지는, 우리가 삶으로 무엇을 슬퍼하고 무엇을 기뻐하는지를 보여줄 때 전해집니다. 다음 세대가 교회를 떠나는 것은, 우리 각 가정에서 신앙의 기억이 정직하게 이야기되지 못했다는 신호일 수 있습니다.
[결론] 성도 여러분, 요엘의 백성에게 기쁨의 뿌리가 마른 그 자리는 끝이 아니었습니다. 요엘서는 결국 이렇게 선포합니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할 것이라... 내 백성이 영영히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로다." 그리고 그 회복의 약속은 신약에 이르러 완전히 이루어집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기쁨이 말라버린 그 뿌리, 곧 우리의 죄와 심판을 십자가에서 대신 짊어지셨습니다. 그분이 마르셨기에, 우리의 기쁨이 다시 살아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오늘 아침, 내 안에 기쁨이 말라 있다면, 그것을 애써 감추거나 종교적인 습관으로 덮지 마십시오. 그 마른 자리를 정직하게 주님 앞에 내어놓으십시오. 거기서 그리스도가 우리를 다시 부르고 계십니다. 기도하겠습니다.
